“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함께 같이 가려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민수기 20장 2-5절).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뒤돌아 보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살펴볼 때 우리는 우리가 제일 힘들고 어려웠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신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현재 삶 속에 기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께서 과거 우리 삶 속에 인도해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현재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사 우리를 인도해 주심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비록 현재 우리가 접한 상황이 우리가 기도하며 기대했던 상황이 전혀 아닐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민21:5). 원망하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을 원망스러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광야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5절). 심지어 그들은 물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였고(20:2) 그들과 다투어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뻔 하였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3절).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총회”(the Lord’s community)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다 죽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4절).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 광야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5절). 그래서 그들은 그 광야를 가리켜 “악한 곳”(this terrible place)이라고 칭하였습니다(5절). 과연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광야는 악한 곳이였습니까?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악한 곳 또는 끔직한 곳이란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악한 곳이라 여겼던 광야에는 그들이 원하는 물이나 무화과나 포도나 석류가 없는 곳이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있어서 악한 곳인 광야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고 있었던 만나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 것을 “박한 식물”(this miserable food)로 여기고 싫어했습니다(민21:5). 싫어했기에 그들은 광야에는 아예 “식물도 없”다(There is o bread!)고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하나님과 모세에게 외쳤습니다(5절). 이것이 바로 현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요6:35)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 생명의 떡을 싫어하고 오히려 우리는 썩는 양식을 더 좋아하므로 그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27절). 그리곤 우리는 그 썩는 양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원망의 목소리로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그리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했는데 왜 하나님은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우리가 보기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하여 끔직한 상황으로 여겨지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타당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가리켜 “여호와의 총회” 곧 ‘주님의 커뮤니티’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총회를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약속의 땅인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이시기 전에 물도 없고,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광야로 인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인정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물이 없는 곳에서도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었어야 했습니다(8, 11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인 모세와 아론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러한 불신은 불만족을 낳았고 그러한 불만족은 결국에 가서는 불평과 원망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과 원망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주님되심과 그 주님께서 “여호와의 총회”인 교회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지를 좀 엿보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기 전에 광야로 인도하신 것일까요? 신명기 8장 2-3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해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겸손케 하시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입에서는 나오는 모든 말씀을 순종하여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을 겸손히 따라야 합니다. 따르대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님과 같이 가려는 각오와 결심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찬송가 360장 – “예수 나를 오라 하네”의 후렴). 그곳이 비로 광야와 같이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을 지라도 우리는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자족하므로 말미암아 그 주님과 함께 그 주님을 따라 어디든지 가야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장 17-18절)
어디든지 주님을 따라 주님과 함게 같이 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