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그리스도의 죽으심 (10)
[사도행전 1장 1-11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큰 사역 가운데 두 번째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9)」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구약성경의 예언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분명한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어떤 죽음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십자가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10)」이라는 제목으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 곧 십자가상의 칠언 가운데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말씀까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네 번째 말씀부터 일곱 번째 말씀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잠잠하셨던 예수님과 예언의 성취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권세 있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체포되시고 심문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과정에서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도, 군인들에게 조롱을 당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님의 침묵은 무능함이나 패배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변호하실 수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맡기신 구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길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침묵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과 죄인들을 향한 인내가 담겨 있었습니다.
침묵을 깨고 선포하신 일곱 말씀
이처럼 잠잠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단순히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드러난 주님의 기도와 약속, 사랑과 순종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는 주님의 긍휼,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도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말씀을 차례로 묵상하겠습니다.
첫 번째 말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장 34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을 기록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1)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향해 저주하거나 보복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기서 ‘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참여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에는 로마 군인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형에 넘기는 데 앞장선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조롱하며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시기보다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이사야 53장 12절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그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가운데서 고난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가볍게 취급된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함께 드러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까지 품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만 바라보지 않으시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2)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구하시면서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에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대적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 가운데서도 용서와 구원의 길을 구하셨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향한 주님의 긍휼입니다.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볼 때 그 잘못만 바라보며 분노와 정죄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물론 악을 악이라고 말하고 잘못에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합니다. 용서는 불의를 정당화하거나 피해자에게 계속해서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죄인에게도 회개와 구원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우리의 삶에도 까닭 없이 우리를 대적하거나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는 분노와 원망이 일어나며, 상대방을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는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도 한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구원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먼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깨달음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제 마음에도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상대방의 잘못을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움과 복수심에 우리 자신이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함께 구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용서와 중보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장 43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두 번째 말씀을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더라.”
(1)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 두 사람의 차이
예수님께서는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다른 강도는 자신이 받는 형벌이 마땅하다고 인정하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 나라를 가지신 분임을 믿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자신의 삶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저지른 죄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었고, 남은 생애 동안 선한 일을 쌓아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자신을 맡겼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 강도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든 세부 사항을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가 강도였고, 자신이 받는 형벌이 마땅하다고 인정했으며, 예수님께 자비를 구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이 장면은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의 약속에서 특별히 주목할 표현은 “오늘”과 “나와 함께”입니다. 첫째, “오늘”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강도에게 즉각적인 약속을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 강도는 자신의 남은 생애 동안 공로를 쌓아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낙원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나와 함께”라는 말씀은 구원의 가장 큰 복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낙원이라는 장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단지 형벌을 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의 과거를 근거로 구원의 가능성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주님께 자비를 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낙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 줍니다.
(3) 행위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구원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이야기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살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인 공로를 쌓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자비를 구했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선한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선행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공로가 아닙니다.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십자가의 강도는 우리가 구원을 얻는 근거가 우리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진실한 회개와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와 생명의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과거만을 바라보며 그에게 구원의 소망이 없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말씀: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장 26–27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세 번째 말씀을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돌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시고,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 그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는 구원의 사명을 이루시는 중에도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이루시는 가운데서도 사람을 향한 사랑과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홀로 남겨 두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그녀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 제자가 그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2) 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는가?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는지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정을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한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그러나 성경은 십자가 아래에 예수님의 형제들이 없었던 이유나, 예수님께서 요한을 선택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모두 밝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셨고, 그 제자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사랑이 단지 추상적인 말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실제적인 필요를 보셨고, 그 필요를 돌볼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3) 십자가 아래에서 시작된 돌봄과 책임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그 말씀을 듣고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성경은 그때부터 그가 마리아를 돌보았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믿음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순종은 때로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을 맡고, 그 사람의 필요를 자신의 일처럼 감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의 필요를 살피셨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4)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
이 세 번째 말씀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제로 순종하는 제자인가?’ 신앙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옮기는 것이 참된 제자의 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따라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 외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섬기는 일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물론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다른 제자들보다 모든 면에서 더 훌륭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의 모습을 통해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20장 8–10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제자들이 무덤에서 돌아간 일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한이 집에 돌아와 마리아와 함께 부활 소식을 나누었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들을 연결할 때는 성경이 기록한 사실과 우리가 묵상하며 생각할 수 있는 적용을 구별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십자가에서 어머니를 부탁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순종한 제자의 행동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돌봄의 사명을 맡기셨고, 제자는 그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곁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소망을 세상에 전하는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으며
오늘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은 원수까지도 품으시는 주님의 긍휼을 보여 줍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자비를 구한 강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셨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 말씀은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사람을 돌보시는 주님의 사랑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세 말씀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주어졌지만, 모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셨고, 죄인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으며, 어머니를 돌보도록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우리는 용서의 은혜를 배우고, 구원의 소망을 얻으며, 사랑으로 섬기는 제자의 길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의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 배우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며,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바라보며,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