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나를 신뢰하며 맡겨드리는 가장 행복한 항복의 삶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누가복음 13:20-2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 20-21절을 읽은 후 원어인 헬라어 성경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헬라어 성경에는 “τρία”(three)(셋)이라는 단어가 21절에서 있는 것을 보고 한국 개역개정에 “가루 서 말”이 무슨 뜻인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서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톤(saton)' 3개는 약 22리터~39리터에 달하는 양으로, 대략 100~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빵을 만들 수 있는 분량입니다”(인터넷).
(2) 그 다음에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헬라어 “ἐζυμώθη”(에쥐모테)(“부풀게 되었다” 또는 “발효되었다”)란 단어가 의미가 궁금해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1절의 'ἐζυμώθη(에쥐모테)'는 헬라어 동사 '주모오(ζυμόω, 누룩으로 부풀게 하다)'의 부정과거 수동태 형식으로, 단순히 "부풀었다"는 상태를 넘어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상태가 되었다"는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비유에서 갖는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면적이고 철저한 변화 (Total Transformation)
완료된 결과: 문법적으로 부정과거(Aorist) 시제는 동작이 완전히 일어났음을 나타냅니다. 즉, 누룩이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 어느 한 부분도 빠짐없이 '전부' 부풀게 했음을 확증합니다.
본질의 변화: 밀가루 반죽이 누룩에 의해 '에쥐모테' 되면, 그 성질과 부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는 복음이 한 사람의 영혼이나 사회에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근본적인 재창조와 변화를 의미합니다.
2. 불가항력적인 전염성 (Irresistible Permeation)
수동태의 의미: '부풀게 되었다(was leavened)'는 수동태 표현은, 가루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누룩(하나님 나라의 능력)'에 의해 이 변화가 주도되었음을 뜻합니다.
침투력: 누룩이 가루 속에 '숨겨진(hid)' 상태에서 조용히, 그러나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전체를 점령해 나가는 과정을 이 단어 하나가 집약해서 보여줍니다.
3. 하나님 나라의 확실한 확장
예수님은 이 단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처음에는 비록 미미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온 세상을 복음으로 가득 채우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에쥐모테'는 복음의 능력이 단순히 겉모양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침투하여 존재 전체를 '전부' 뒤바꾸어 놓았음을 선포하는 단어입니다”(인터넷).
(a) 저는 이 단어의 의미를 생각할 때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복음의 강력한 능력이 한 사람의 영혼에 임했을 때 일어나는 근본적인 재창조와 변화에 대해서 궁금해져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영혼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뒤바꾸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1. 존재론적 침투 (Infiltration)
누룩이 가루 반죽의 '틈새'를 찾아 스며들듯, 복음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즉 자아의 중심에 침투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 반죽이 누룩의 화학 작용을 거부할 수 없듯이, 성령의 역사가 영혼에 임하면 인간의 고집과 방어 기제가 무너집니다.
무의식까지의 변화: 누룩은 반죽의 겉면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를 변화시킵니다. 이는 복음이 우리의 도덕적 행위(겉모습)뿐만 아니라 생각의 방식, 가치관, 무의식적 습관까지 재창조함을 의미합니다.
2. 폭발적인 팽창 (Expansion)
누룩은 가스(CO2)를 발생시켜 반죽을 부풀립니다. 좁고 답답했던 반죽이 생명력으로 가득 차오르는 과정입니다.
영적 자유의 확장: 죄와 죄책감에 억눌려 수축해 있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에쥐모테' 됩니다. 존재의 크기가 커지고, 예전에는 품을 수 없었던 타인과 세상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공간이 생겨납니다.
생명력의 분출: 정지해 있던 반죽이 움직이듯, 죽어있던 영혼이 살아 움직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반응하기 시작하는 역동적인 변화입니다.
3. 돌이킬 수 없는 변형 (Irreversible Mutation)
가장 놀라운 점은 '가루'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한 번 부풀어 오른 반죽을 다시 마른 가루로 되돌리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음으로 재창조된 영혼은 이전의 허무한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본질적인 질적 변화를 겪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이 바로 이 '에쥐모테'의 상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인터넷).
(i) 여기서 저는 한 사람의 영혼이 복음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불가항력적인 재창조'가 일어난다는 것을 칼빈이 5대 강령 중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연관성이 궁금해졌습니다. 인공지능의 답변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복음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에쥐모테(부풀게 됨)'의 역동성은 칼뱅주의 5대 강령(TULIP) 중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와 신학적으로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그 연관성을 세 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변화의 주도권: '수동태'와 '단독 사역'
에쥐모테(수동태): 앞서 언급했듯이 이 단어는 수동태입니다. 가루가 스스로 부푸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투입된 누룩이 변화를 주도합니다.
불가항력적 은혜: 칼뱅은 구원이 인간의 의지나 협력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고 보았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간은 스스로 반응할 수 없기에, 성령께서 마치 누룩처럼 영혼의 중심에 침투하여 거부할 수 없는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시는 것입니다.
2. 저항을 이기는 침투력: '스며듦'과 '효력 있는 부르심
'누룩의 침투: 누룩은 반죽의 저항을 받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전체로 퍼집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Effectual Calling): '불가항력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달콤하고 강력하여 인간이 기쁜 마음으로 굴복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완악했던 마음이 누룩에 의해 부드러운 반죽이 되듯, 성령의 은혜는 영혼의 저항을 녹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로 재창조합니다.
3. 결과의 확실성: '전부'와 '견인
'전부 부풀게 함: 누룩은 결국 가루 서 말 전체를 변화시키고야 맙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확실한 재창조: 불가항력적 은혜를 경험한 영혼은 본질적으로 변화됩니다. 이는 5대 강령의 마지막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누룩(은혜)을 넣으셨다면, 그 영혼이 완전히 부풀어 올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의 과정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는 확신입니다.
결론
결국 '에쥐모테'라는 단어 속에 담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변화’는, 칼뱅이 강조한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은혜의 절대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정교한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3)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 20-21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신 이유는 복음이 가진 침투력과 총체적인 변화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 비유는 앞선 '겨자씨 비유'와 쌍을 이루어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1. 보이지 않는 은밀한 확장 (내적 변화)
겨자씨 비유가 눈에 보이는 외적 성장을 강조한다면, 누룩 비유는 가루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게 퍼져나가는 내적 변화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요란한 구호나 외형적인 세력 확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삶의 영역에 조용히 스며들어 전체를 변화시킵니다.
2. 강력한 변화와 영향력 (질적 변화)
적은 양의 누룩이 거대한 밀가루 반죽을 부풀려 성질을 완전히 바꾸듯, 하나님 나라는 그것이 임하는 곳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꿉니다.
가루 서 말: 이는 약 20kg(약 40리터) 정도로, 100~150명이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전부 부풀게 함: 복음의 영향력이 개인을 넘어 가정, 사회, 국가 전체로 퍼져나가 결국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될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3. 일상 속의 하나님 나라
예수님은 당시 유대 여성들이 매일 접하던 빵 만드는 일상을 비유로 드셨습니다 . 이는 하나님 나라가 먼 미래나 특별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힘임을 일깨워 줍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비록 지금은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킬 확실한 승리와 소망을 제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입니다”(인터넷).
(a) 그러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마치 반죽 속의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가 변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 관계의 변화: ‘섬김과 용서’
일상에서 만나는 가족, 직장 동료, 이웃과의 관계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합니다. 나 중심의 이기심 대신 상대방을 존중하고, 갈등 상황에서 먼저 용서하며,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 누룩이 퍼져나가는 방식입니다. 내가 변함으로써 내가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듯' 변하게 됩니다.
2. 가치관의 변화: ‘세상과 다른 기준’
성공, 돈, 권력이라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사랑, 정의, 평화라는 하나님 나라의 기준을 선택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행동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을 지키는 일상의 선택들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3. 고난 속의 평안: ‘흔들리지 않는 신뢰’
어려운 상황이나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평안을 유지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 평안은 누룩처럼 은밀하게 주변으로 번져나가 다른 이들에게도 소망을 줍니다.
4. 작은 일에 대한 충성: ‘소명의식’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업무나 가사 노동을 '주님께 하듯' 정성껏 수행하는 것입니다. 나의 노동이 타인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지탱하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달을 때, 그 평범한 현장이 바로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 됩니다.
결국 누룩 비유의 핵심은 '전염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내 주변의 온도를 바꾸고, 결국 전체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우리 일상에 임합니다”(인터넷).
(i) 제가2007년 10월 7일에 “예수님을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란 제목 아래 쓴 컬럼입니다:
예수님을 전염시키는 사람이였던 사도 바울을 가리켜 성경은 “이 사람은 역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24:5).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했기에 “역병”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마게도냐의 수도요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있었던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뜻을 풀어 증명하며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습니다(행17:2-3). 그 때에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야 합니다. 우리 모두 어디를 가던지 예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염시키는 자들이 되십시다.
· 어디를 가던지 예수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염시키는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이 땅에 임하길 기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핵심적인 사명입니다. 그 의미를 세 가지로 깊이 있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인터넷):
1. 우리가 바로 '누룩'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면서 “누룩”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복음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 복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가루 서 말) 속에 던져진 우리는, 거창한 구호보다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본질을 품고 세상의 틈새로 스며드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거룩한 전염성'을 가진 누룩으로 존재할 때, 하나님 나라는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2. '전염'은 조용하지만 강력합니다.
누룩은 소란을 피우며 반죽을 부풀리지 않습니다. 그저 그 안에 머물며 묵묵히 제 역할을 할 뿐입니다.
말뿐인 복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녹이고 부풀게 합니다.
우리가 가정, 직장, 학교라는 '반죽' 속에서 사랑과 희생, 정직으로 살아갈 때,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에쥐모테(ἐζυμώθη,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3. '전부'를 부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우리가 전하는 사랑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누가복음 13장 21절의 약속처럼, 하나님은 우리라는 작은 누룩을 통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 '전부'를 변화시키고자 하십니다.
나 한 사람의 작은 친절과 사랑의 고백이 결국 한 가정을, 한 일터를, 나아가 세상을 뒤바꾸는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전염시키는 삶"이란, 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강력한 누룩'이 나를 통과해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삶입니다.
- 여기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강력한 누룩'이 나를 통과해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 삶은 내가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력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흘러넘침'의 삶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 '나'를 녹여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 (Self-Emptying)
누룩은 밀가루 반죽 속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만, 그 결과로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나의 고집, 자랑, 자아를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의 성품(사랑, 온유, 겸손)이 나라는 통로를 통해 투영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 안의 예수님은 더 선명하게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2. 일상의 '틈새'로 스며드는 삶 (Permeating)
누룩은 반죽의 가장 깊은 틈새까지 찾아 들어갑니다.
거창한 종교적 업적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짜증이 날 상황에서 한 번 더 웃어주고, 소외된 동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그 작은 '스며듦'이 상대방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됩니다.
3. '전염시키는' 생명력을 신뢰하는 삶 (Trusting the Power)
내가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누룩 자체가 이미 부풀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듯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이미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는 그저 그분이 흘러가시도록 '통로'만 열어두면 됩니다. 변화는 내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과해 흘러간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직접 하시는 일임을 믿고 평안을 누리는 삶입니다.
4. 죽은 가루를 생명의 떡으로 만드는 삶 (Vitalizing)
마른 가루는 그대로 두면 흩어지지만, 누룩이 들어가면 서로 엉겨 붙어 풍성한 떡이 됩니다.
반목과 갈등이 있는 곳에 들어가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가 되는 삶입니다. 나의 존재가 들어감으로써 차가웠던 관계가 따뜻해지고, 죽어있던 소망이 다시 살아나는 재창조의 현장을 목격하는 삶입니다.
결국 '예수님이라는 강력한 누룩'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나를 신뢰하며 맡겨드리는 가장 행복한 항복의 삶입니다”(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