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같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보잘것없는 저 같은 죄인의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묵상 나눔 사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누가복음 13:18-19).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 18-19절 말씀을 읽을 때 제일 먼저 ‘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18년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몸이 굽어펴지 못하던 여자를 고쳐주신 사건(10-13절) 이후 회당장과의 대화를 하신 다음에(14-17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a) “예수님은 16절에서 이 여자를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즉, 이 치유는 단순히 병을 고친 것이 아니라, 사탄의 통치 아래 있던 영혼을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안으로 빼앗아 오신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사탄의 결박을 풀고 자유를 주는 역동적인 통치다’라는 것을 먼저 보여주신 후, 곧바로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라며 비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인터넷).
(i)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골로새서 1장 13절 말씀도 은혜가 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누가복음 13장의 사건(치유)과 요한복음 5:24(생명의 약속), 골로새서 1:13(신분의 이동)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합니다. 이 셋의 연결성을 세 단어로 요약하면 현상, 법정,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눅 13:16] 현상: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증거
핵심: 사탄에게 매인 여자를 '푸는 것'.
연결성: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눈으로 보여줍니다. 굽은 허리가 펴지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회복을 넘어, 사탄의 지배력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역동적인 현장 보고'입니다.
2. [요 5:24] 법정: 하나님 나라의 법적 선포
핵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연결성: 누가복음의 치유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이미 사망(사탄의 영역)의 법에서 생명(하나님의 영역)의 법으로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탄이 그를 묶어둘 권리가 없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3. [골 1:13] 실제: 하나님 나라의 공간적 이동
핵심: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연결성: 이 통치가 얼마나 '강력한 구출 작전'인지를 보여줍니다. '건져내다'라는 표현은 포로 수용소에서 강제로 구출해내는 군사적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여자가 사탄의 결박에서 풀려난 것은, 그녀의 영적 주소가 '흑암'에서 '아들의 나라'로 강제 이주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 구절의 종합적 결론
이 구절들을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 나라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1. 골 1:13에 의해, 우리는 사탄의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강제 구출(Rescue) 되었습니다.
2. 요 5:24에 의해, 이 이동은 취소될 수 없는 영구적인 법적 확정(Verdict)이 되었습니다.
3. 눅 13:16에 의해, 그 결과로 우리 삶을 억누르던 모든 결박이 풀리는 실질적인 자유(Liberation)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 사건 직후에 겨자씨(13:18-19) 비유를 드신 이유는, 이렇게 한 개인에게 임한 '구출과 해방'의 통치가 결국 온 세상을 덮는 거대한 나무처럼 확장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인터넷).
(2) 둘째로,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누가복음 13장 18-19절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하나님의 나라”)란 문장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이미 묵상한 말씀 글을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i) “우리가 전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공간적 천국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이미 임하였고(Already), 장차 완성될(Not Yet)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Reign of God)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정의, 사랑, 평화가 삶의 전 영역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인터넷).
통치의 핵심: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며, 우리가 그 통치를 받아들이는 모든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존하는 나라: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되어 성령 안에서 우리 마음과 공동체 속에 임한 현재적인 나라입니다.
회복과 변화: 죄로 깨어진 세상이 회복되고, 이기심이 사랑과 환대로 바뀌는 새로운 공동체(교회)를 통해 나타납니다.
미래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완전히 성취될 종말론적 희망입니다.
전하는 방식: 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공의와 사랑)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여 그 통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살아가며, 그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인터넷).
(b)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 18절에서 언급된 헬라어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오ῦ” (헤 바실레이아 투 테우)(“하나님의 나라”)의 성경적 관점에서의 핵심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기본적 의미: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
통치(Reign) 중심: '바실레이아'는 영토적인 개념(Kingdom)보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권적 통치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상태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장소보다 관계: 특정한 공간적 장소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세의 행사를 뜻합니다.
2. 누가복음 13장 18절 문맥에서의 의미 (겨자씨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라고 질문하시며 겨자씨 비유를 드셨습니다.
현재적 확장성: 아주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듯, 하나님 나라는 비록 작게 시작되었으나 강력하게 확장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포용성: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처럼,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됨에 따라 많은 이들이 그 안에서 안식과 구원을 얻게 됨을 상징합니다.
3. 하나님 나라의 다중적 성격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는 시간적으로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집니다.
이미 임한 나라 (Already):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예: 누가복음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 (Not Yet): 세상 끝 날에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전히 완성될 미래적 실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13장 18절의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시작된 하나님의 다스림이며, 그것이 겨자씨처럼 작게 보일지라도 결국 온 세상을 변화시키고 완성될 거대한 생명의 통치임을 의미합니다.
(3) 마지막 셋째로,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누가복음 13장 18-19절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κόκκῳ σινάπεως”(코코 시나페오스)(“겨자씨 한 알”)이란 말씀이 궁금해졌습니다.
(a) “이 표현은 단순히 식물의 씨앗을 넘어 다음과 같은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작고 보잘것없는 시작 (Insignificant Beginning)
극도의 작음: 당시 유대 사회에서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을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이었습니다.
초라한 출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가 세상의 눈에는 매우 미약하고 초라하게 시작되었음을 상징합니다.
2. 폭발적인 생명력과 역동적 성장 (Dynamic Growth)
반전의 역사: 겨자씨는 작지만 그 안에 거대한 생명력을 품고 있어, 자라나면 3~4미터 높이의 큰 나무(또는 큰 풀)가 됩니다.
멈출 수 없는 확장: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는 속도로 확장되어 결국 온 세상을 덮게 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3. 포용성과 안식의 처소 (Inclusivity & Refuge)
공동체의 형성: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방인)을 품는 거대한 공동체가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평안의 제공: 고단한 영혼들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진정한 안식과 보호를 얻게 됨을 상징합니다.
4. 믿음의 실재 (Actual Faith)
분량보다 생명력: 다른 본문(눅 17:6)과 연결해 볼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생명력'입니다.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살아있다면 산을 옮기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겨자씨 한 알은 ‘세상의 눈에는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대한 변화를 일으켜 만민을 품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인터넷).
(i) 저는 이 “겨자씨 한 알”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몇 가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 “작고 보잘것없는 시작”이라는 설명을 생각할 때 저는 제가 쓴 말씀 묵상 글들을 다시금 찾아보았습니다:
1. 보잘것 없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자기 자신을 보잘것 없는 존재로 여기고 있을 때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사무엘상 15:17, 현대인의 성경; 참고: 9:21,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내 가족 중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자"라고 말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셔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사사기 6:15, 현대인의 성경).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는 사도들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이요(고린도전서 15: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 없는 나"라고 말한 바울(사울)(에베소서 3:8, 현대인의 성경; 참고: 고린도후서 12:11, 현대인의 성경)을 이방인의 사도(로마서 11:13; 갈라디아서 2:8)로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보잘것 없는 사람들(사도행전 4:13, 현대인의 성경)을 택하셔서(고린도전서 1:28,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없는 저에게 ….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없는 저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시사 제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게하셨는데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기쁜 소식(복음)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게 하시사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와 함께 상속자가 되고, 우리와 한 지체가 되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참고: 에베소서 3:5-9, 현대인의 성경).
3. 보잘 것 없는 제 인생을 주님께 받치면 …
배에서 내리신 예수님은 많은 군중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와서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갈 것 없다.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군중들을 풀밭에 앉히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약 5,000명)은 모드 실컷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나 거뒀습니다(마태복음 14:14-2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저 같이’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안 되는 인생을 통해서도 전능하신 주님은 충분히 남자만 약 5,000명이 되는 사람들에게도 생명의 빵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누게 하시사 영의 양식을 먹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2) 보잘 것 없는 제 인생을 주님께 받치면 주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십니다.
4. 작고 보잘것없는 우리는 …
작고 보잘것없는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참고: 이사야 41:13-14, 현대인의 성경).
5. 보잘 것 없는 우리 힘
우리는 결코 헛된 것을 기뻐하며 보잘 것 없는 우리 힘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참고: 아모스 6:13, 현대인의 성경).
· “멈출 수 없는 확장: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는 속도로 확장되어 결국 온 세상을 덮게 될 것임을 강조합니다.”라는 설명을 읽을 때 저는 멈출 수 없는 열정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던 충성된 지도자 느헤미야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제가 2019년 9월 2일에 “2019년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 둘째날”이란 제목 아래 쓴 사역 일기의 한 부분을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 누군가를 '관찰'하면서 결국에 가서는 주님 안에서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기쁨의 맛을 보는 삶, 그것이 '오지랖 삶'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하. 그 오지랖 삶의 지경을 넓히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그 삶을 살게하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지체에게 주님 안에서 약 4년전부터인가 나를 알게되면서 지금까지 나를 보면서 충고나 권면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마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 지체를 통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속에서 듣고 배우길 원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지체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하게 하시는 인터넷 사역의 원동력은 주님이 사랑하시고 주님이 보고 계시며 주님이 듣고 계시는 그 지체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사랑과 위로의 도구로 쓰임 받는 기쁨이라 생각한다. 그 맛을 보게 하시기에 다가감을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비록 다가감에 원치 않는 많은 실언과 실수와 심지어 상처를 입힌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저는 2019년 8월 19일에 “멈출 수 없는 사랑?”이란 제목아래 쓴 글을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멈출 수 없는 주님의 이타적인 사랑, 그러나 멈춰야할 나의 이기적인 사랑.
· “믿음의 실재 (Actual Faith). 분량보다 생명력: 다른 본문(눅 17:6)과 연결해 볼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생명력'입니다”란 설명을 읽을 떄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엡2:8)이란 마치 살아있는 씨앗과 같아서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야고보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죽은 믿음(약2:17, 26)과 대조적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결론적으로, 겨자씨 한 알 같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보잘것 없는 저 같은 죄인의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묵상 나눔 사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