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아도

예수님 덕분에 상을 받을 것입니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누가복음 6:22-23)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22-23 말씀을 마태복음 5 11-12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a)    여기서인자로 말미암아”(6:22) 말씀은나로 말미암아”(5:11)라는 말씀으로서예수님 자신 때문에라는 의미입니다(참고: 호크마).  저는 의미를 묵상할 때에예수님 때문에(덕분에?)”라는 제목 아래 제가 20205 4 26일에 글을 다시금 읽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아 끌려가 조사를 받을 우리는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기쁜 소식) 전할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참고: 마가복음 13:9-13, 현대인의 성경).”

 

(i)                      그리고 저는 글을 다시 읽고 생각하게 때에 어제 화요일 사랑하는 막내 예은(Karis)이랑 안에서 나눴던 대화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대화 내용이란 실제로 예은이가 저에게 마가복음 13 11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너희는 끌려가 조사를 받을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말고 성령님이 일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분은 너희가 아니라 성령님이시다”(현대인의 성경)].

 

·       예은이가 성경 구절 말씀을 저랑 대화하면서 인용한 대화 내용의 문맥은 예은이가 전도(evangelism) 하는데 전도를 받는 사람들 앞에 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마가복음 13 11 말씀대로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때에 성령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하면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예은이가 저에게 그리 말한 이유는 제가 예은이에게 주님의 은혜로 하는 인터넷 사역 가운데 만나게 하는 사람들과 온라인이든 오프 라인이든 대화를 성령님이 저로 하여금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저는 말씀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말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ii)                    그러므로 저는예수님 자신 때문에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어려움과 힘든 일들을 당하는 , 심지어 위기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또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기쁜 소식) 전할 있는 좋은 기회라 믿습니다.

 

·       그러기에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22절에서인자로 말미암아”[“나로 말미암아”(5:11)],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과 따돌림과 모욕을 당하고 우리 이름이 더럽혀질 (22, 현대인의 성경)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지 가짜인지 들춰질 것이며,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러한 어려움들과 괴로운 일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향기를 들어낼 있는 좋고 귀한 기회라 믿습니다.

 

-            그러기에 저는예수님 때문에라기보다예수님 덕분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예수님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당한다 할지라도 예수님 덕분에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우리는 신앙을 지킬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향기를 들어내되 원수까지도 사랑케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말미암아 인자한 언어와 행실로 우리의 신앙을 전파할 있는 좋은 기회가 것입니다(참고: 찬송가 336환난과 핍박 중에도”).

 

(b)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핍박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22 말씀을 마태복음 5 11 말씀과 연관해서 6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첫째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미움을 당할 것입니다[“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6:22)].

 

·       성경은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미워할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미워하다라는 헬라어 “μισήσωσιν”(미세소신) 동사 “μισέω”(미세요)에서 형태로, 직역하면 "미워할 것이다" 혹은 "(미워해야만 한다)"라는 미래/가정법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인터넷).

 

-            그러면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요한복음 7 7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없어도 나는 미워한다.  이것은 내가 세상의 일이 악하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는 세상의 일이 악하다고 증거하시는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n  세상은 타락하여 본질적으로 악해졌으므로 완전히 선하신 예수님과 정반대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미움을 당하십니다( 3:15).  예수님이 미움을 당하시는 사실이 도리어 그분이 세상의 구주 되신 증표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미움 받으신 사실을 보고 도리어 그를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호크마).

 

·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도 우리는 그들을 선대해야 합니다(6:27).  좋은 예가 바로 다윗이 자기를 학대하는 사울 왕을 선대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24 17절을 보십시오: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            말씀은 사울 왕이 다윗에게 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다윗의 손에 넘기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를 죽이지 않은 것을 알고(18) 다윗에게 소리를 높여 울면서(16) 말한 내용입니다.  분명히 자기는 다윗의 생명을 찾아 해하려고 하는데(11)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아껴 그의 손을 들어 자기를 해하지 아니한 것을 알고(10) 사울 왕은 다윗에게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말했습니다(17).  그리고 사울 왕은 다윗에게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19) 말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는 사울 왕을 선대할 있었을까요?  그는 사울 왕에게 아무 범죄한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11) 사울 왕이 자기 주위에 사람들의 말인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9) 말을 듣고 그의 생명을 찾아 해하려고 하는데(11) 어떻게 다윗은 그러한 사울 왕을 선대할 있었을까요? 

 

n  저는 대답을 창세기 50 20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말씀은 요셉은 자기를 해하려고 자기 형들에게 말로서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에(34:8) 오히려 그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것입니다(50:21).  다윗이 자기를 해하려고 사울 왕을 선대할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34:8).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고, 사울 왕이 자기를 질투하여 죽이려고 했을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원수에게서와 자기를 미워하는[“μισέω”(미세오): “이는 '미워하다', '증오하다'라는 뜻으로, 원수나 적대적인 존재를 향한 감정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 원수들, 그리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가리킬 사용됩니다”(인터넷)] 사울 왕의 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았습니다(참고: 1:71).  그랬기에 비록 사울 왕이 자기를 학대하였지만 다윗은 그를 선대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중심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  우리도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어려운 만났을 , 우리가 힘들고 심지어 위기의식까지 느낄 때에라도 우리는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요셉과 다윗처럼 하나님 중심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된 행동은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우리를 학대하는자를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지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학대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자들로서(34:8)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을 믿기에(8:28) 우리는 우리를 학대하는 자에게까지도 선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지혜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ii)                    둘째로,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멀리할 것입니다[“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멀리하고 …”(6:22)].

 

·       성경은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멀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멀리하다라는 헬라어φορίζω”(아포리조)경계를 구분하다 의미로서 이말은 사회적 교제 관계에서 소외되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호크마).

 

-            그리스도를 위해 견디는 배척: 누가복음 6 22절은 인자를 위해 "배척당하는" 제자들을 축복합니다.  초기 회당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러한 배척은 로마 시대의 박해를 거쳐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문화적 우상과 충돌하는 곳마다 나타납니다.  이러한 고립을 겪는 신자들은 하늘의 상급과 선지자들과의 교제라는 약속을 상속받습니다”(인터넷).

 

n  그러므로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배척당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들이고(환영하고) 함께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융화되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혹시 우리가 그들과 화합하고 하나가 되어서(또는 섞여서) 구별이 없어져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     종말론적 구분: 개의 비유는 최종 심판에서 일어날 일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천사들이 와서 악한 자들을 의인들 가운데서 갈라낼 것이다"( 13:49).  그리고 영광의 보좌 앞에서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그분께서 사람들을 서로 구분하실 것이다"(25:32).  이러한 장면들은 현재의 모호함이 완벽하고 되돌릴 없는 정의로 대체될 것임을 확증합니다.  따라서 복음 전도는 엄중한 긴박감을 가지며, 목회 사역은 교인들이 궁극적인 심판에 대비하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인터넷).

 

·       현대인의 성경은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너희를    따돌리고 …”(6:22,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씀하고 있기에 저는 따돌림을 당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따돌림을 당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을 있으며(세상으로부터의 왕따), 교회 안에서도 죄성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할 있지만, 성경은 이러한 상황에서 복이 있다고 가르치며(마태복음 5), 요셉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으로 극복하며, 자신만의 재능을 키우고 진심 어린 도움을 통해 이겨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인터넷).

 

n  따돌림의 원인과 의미:

 

세상으로부터의 핍박: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의 죄악과 가치관이 충돌하여 따돌림을 당할 있으며, 이는 오히려 복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왕따').

 

교회 내의 죄성: 교회 안의 아이들도 죄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따돌림이 발생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집단 따돌림은 힘을 휘둘러 약자를 짓밟는 행위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원칙에 반대되는 행동이며, 하나님은 이러한 세력을 대적하십니다.

 

극복을 위한 성경적, 실제적 방법:

 

하나님께 의지: 가장 중요하며, 요셉의 예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힘이 됩니다.

 

사랑과 인정: 가족(부모)으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격려를 받고, 스스로 무언가를 잘해서 인정받는 경험이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자신만의 특기 개발: 공부나 운동 자신만의 재능을 키워 실력을 쌓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건강한 영성: 건강한 영성은 따돌림을 이겨내는 필수적입니다.

 

진심 어린 소통: 주눅 들지 않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사람씩 만나 진심으로 대화하며 편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

 

세상과 구별됨: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체가 구별됨을 의미하며, 이는 세상의 핍박을 통해 더욱 뚜렷해질 있습니다.

 

긍정적 변화 추구: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가치를 기억하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실현되도록 노력합니다”(인터넷).

 

(iii)                 셋째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욕을 먹을 것입니다[“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6:22)].

 

·       성경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욕을 먹을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욕하다라는 헬라어νειδίζω”(오네이디조)(원시 어근에서 유래했으며, "이빨을 드러내며 비난하다, 욕하다"라는 ) 적절하게는, 모욕하다, 비난하다, 조롱하다(저주하다), 모욕을 주다, 책임을 전가하다(수치를 안겨주다) 누군가(또는 어떤 ) 죄가 있다고 여기고 따라서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실에 근거할 수도 있고(11:20), 잘못된 가정에 근거할 수도 있습니다(5:11)(인터넷).

 

-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욕하는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가정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욕하고 있는 것일까요? 

 

n  제가 2018 10 14일에모욕당해야할 그리스도인들?”이란 제목 아래 마태복음 27 39-44 말씀을 묵상한 글에 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욕을 먹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만 욕을 먹고 있는게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만큼지금 우리는 욕먹을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부끄러워하기보다 욕먹는 것조차도 익숙해져 가고 있는 같아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상 욕먹을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상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들을 하지말아야 합니다.  마디로,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우리의 죄악된 삶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  저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불순종하는 자들로부터 충분히 모욕을 당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 순종하는 자는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모욕을 당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요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불순종하는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에게까지 모욕을 당할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하지 않고 그리 모욕을 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세상 사람들과 같이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받은 욕입니다.  하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범하고 사니까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같고, 나아가서 함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형제, 자매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것도 익숙해진 같습니다.  이렇게 욕을 먹는 일들을 했기에 욕먹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회개할 일이지만 아무 욕먹을 일들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데 모욕을 당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에게까지 모욕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39,44).”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서는 이상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희롱을 당하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아무 없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시므로 희롱을 당하였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우리 죄인들이 조롱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당연시 안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당연한 삶을 살고 있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욕을 먹고 모역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지극히 정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루 종일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20:8).”

 

(iv)                 넷째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박해(“핍박”) 받을 것입니다[“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박해하고 …”(5:11)].

 

·       여기서박해 헬라어 “διώκω”(디오코) 기본적인 의미는 '쫓다', '추격하다'이지만, 문맥에 따라 '핍박하다', '박해하다' 또는 '열심히 힘쓰다', '달려가다' 긍정적/부정적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 ' (부정적 의미) 또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열심을 내는 '(긍정적 의미) 표현할 쓰이며, '뒤쫓아가는 행위'(핍박하려고) '어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열심'(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가지 핵심 의미를 가집니다(인터넷).

 

-            저는 가지 핵심 의미를 묵상할 사도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이유는 사도 바울은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3:14)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복음에 합당한 생활) 하였기에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맞았으며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파선하고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 때문입니다(고후11:23-27).

 

n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과 복음(8:35)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열심히 달려갈 다양한 박해가 충분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21 12-13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이 너희를 잡아 괴롭히고 회당과 감옥에 넘길 것이며 너희는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나 오히려 이것이 그들에게 나를 증거하는 기회가 것이다.”

 

#      제가 2020 2 12일에괴로움은 기회입니다.”하는 제목 아래 말씀 묵상 글의 결론 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괴로울 입술로나 행동으로나 하나님께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괴로울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의 세미한 음성인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머물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괴로운 환경에서 감정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생각으로 괴로운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괴로움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우리의 괴로운 환경을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승리!”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으니 너희도 핍박할 것이다. …”(15:20, 현대인의 성경),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            요한일서 54-5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기느니라”, “이기는” 그리고 “이기는 자”란 말씀을 3번이나 하고있고 또한 “세상”이란 단어를 3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이란 단어와 “믿는 자”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누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지를 마디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자”(4),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5).  사실을 종합해서 생각할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자” 사랑의 하나님(4:8, 16)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사(19)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사(3:1) “자기의 독생자”를“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서 화목 제물로 아들을 보내”셨고(4:9, 10),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2:2)이신“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1)께서는 “우리를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므로(3:16, 현대인의 성경)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5:1, 4)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셨고(1,5),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므로(3:1,2) 지금 우리는 “세상”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n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2:15).  이유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부터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것”이기 때문입니다(16). 그리고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17).  그러므로 거듭난 우리들, 중생한 우리들, 피조물( 사람) 우리들은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또한 제가 제안한 요한일서 전체의 4가지 주제를 생각할 우리가 싸워야 “세상”이란 (1) 어두운 세상이요(1:5, 6; 2:8, 9, 11), (2) 거짓된 세상이요(1:6, 8, 10; 2:4, 21,22; 4:1, 6, 20), (3) 미움의 세상이요(2:9, 11; 3:12-15; 4:20) 또한 (4) 악한 세상이요 불의한 세상입니다(1:9; 2:2, 13, 14,16; 3:12; 5:17, 18, 19, 21).  우리는 이러한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의 비결은 “믿음”입니다.

 

#     사도 요한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우리의 믿음이니라”(5:4).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1, 5) “하나님께로부터 자”(1, 4), 거듭난 , 중생한 ,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3:1, 2) “세상을 긴다는 말씀입니다(5:4, 5).     

 

(v)                    다섯째로,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거짓말로 온갖 악닥을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때에 …”(5:11, 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거짓말 생각할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을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거짓말장이에 불과합니다”(요일1: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장이며 진리가 속에 있지 않습니다”(2:4, 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 거짓말장이의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을 생각할 요한일서 2 9, 11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 가운데 산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아직도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두움 속에 있고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 거짓말장이의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이란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n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자입니다.  살인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15, 현대인의 성경).

 

n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4:20, 현대인의 성경).

 

-            또한 거짓말장이의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이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 육신의 정욕과 눈의 욕심과 삶에 대한 자랑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도 그것에 대한 욕망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2:15-17, 현대인의 성경).

 

n  거짓 예언자들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며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4:5, 현대인의 성경).

 

-            또한 거짓말장이의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이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22 상반절).

 

·       여기 마태복음 5 11절에서온갖 악담”[“모든 악한 ”(개역개정)] 생각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하게 비난, 핍박, 중상모략을 당하며 온갖 거짓된 비방과 험담의 대상이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참고: 인터넷).

 

-            여기서모든 악한 ”(11) 욕설, 비방, 험담, 중상모략 해롭고 부정적인 모든 언어를 포함합니다(인터넷).

 

n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우리의 삶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고발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vi)                 마지막 여섯재로,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을 악하다 하여 우리를 버릴 것입니다[“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6:22)].

 

·       여기서 '버리다'라는 헬라어κβάλλω”(에크발로) 연극 배우를 무대에서 쫓아내는 것에 대해 사용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악하다 하여 버림을 당한다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 종종 있었듯이 경멸과 조소거리가 되어 마침내는 투옥이나 재판, 사형에까지 이르도록 버림을 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호크마).

 

-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악하다’, ‘잘못되었다하고 비난하며 멀리하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인터넷).

 

n  이러한 배척과 버림받음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천국 백성)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는 영적인 축복이자 기쁨이 것입니다! (참고: 인터넷)

 

(c)    이같이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미움과 모욕과 따돌림(배척) 박해를 당하고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하고 우리를 버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2)].

 

(i)                      지금 21세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고난이나 박해를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유는 첫째로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들은 고난과 박해를 통하여 그들의 신앙이 정화되기 때문이요, 그리고 셋째로 고난과 박해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더욱 깊이 체험하는 되는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정의, 옳은 )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다는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의 삶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박해를 받으며 거짓으로 그들이 우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하는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것이기 때문입니다(12).  우리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욕을 먹고 박해를 받을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제가 2016 8 7일에 Iain M. Duguid 목사님의 " Hero of Heroes" 책을 읽으면서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은 ...”이란 제목 아래 마태복음 5 10절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글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은 ...

 

1.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 것이 자신에 복인 알고 있습니다(5:11).  그러므로 /녀는 박해를 받을 때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12).

 

2.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1:9).  /녀는 예수님처럼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웁니다(5:8).

 

3.       고난의 유익을 얻어 누립니다(119:71).  /녀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줄 압니다(벧전3:17).  /녀는 고난을 통하여 그릇 행하던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119:67).

 

4.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사모합니다(8:18).  /녀는 하늘에서의 상을 바라봅니다(5:12).  그러므로 /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세상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합니다(11:25).

 

-            그래서 저는예수님 때문에라고 말하기보다예수님 덕분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2019 8 30일에오늘도 당신덕분에행복합니다!” 제목 아래 글입니다: “’때문에 말보다덕분에 말을 사용하십니다.    이유는때문에 말은 불만족 속에서 불평과 원망을 표출하지만덕분에 말은 만족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당신덕분에행복합니다!  실로 저는예수님 덕분에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