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리스도인의 비우기란?

 

 

 

1장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자기 비움, 곧 케노시스(Kenosis)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셨다는 것은 신성을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리시던 영광과 권리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 붙들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움은 십자가의 죽음과 순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어떻게 비워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종교적 결심이 아닙니다. 내 욕심 하나를 내려놓고, 내 계획 하나를 포기하고, 내 물질 일부를 나누는 것만으로 비움이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이 비움의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전제’는 구약의 제사에서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과 사역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의 비움이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비움은 내가 무엇을 조금 덜 가지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통제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실제로는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고백이 실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 계획과 다른 길이 열릴 때도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말씀 앞에서 다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주권을 비우는 것입니다. 비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에서 “주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로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내 안의 있는 죄와 욕망을 정직하게 비우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내 안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교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고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욕망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매일 자신의 마음을 말씀 앞에 세우는 일입니다. “주님, 제 안에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제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고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붙들고 회개해야 합니다.

비움은 내 안에 있는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교만을 발견했다면 그 교만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비워내야 합니다. 탐욕을 발견했다면 그 탐욕을 인정하고 비워내야 합니다. 미움을 발견했다면 그 미움을 감추지 말고 비워내야 합니다. 위선을 발견했다면 그 위선을 벗겨내고 비워내야 합니다. 이러한 비움의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이어질 4장부터 12장에서 하나씩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빈자리를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비움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마음에서 욕심을 비웠는데 그 자리를 다른 욕심이 채울 수 있습니다. 교만을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는 교만하지 않다’는 자부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비움은 단순히 마음을 비워 빈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비운 자리를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마음을 빈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운 자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비워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자기 부인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여기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자신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내 삶의 최종적인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내 편안함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권리보다 섬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보다 화해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이익보다 진실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은 한 번의 감정적인 결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나는 내 뜻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것인가? 오늘도 나는 내 권리를 주장할 것인가, 사랑으로 섬길 것인가? 오늘도 나는 나를 높일 것인가, 다른 사람을 세워 줄 것인가? 이러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그리스도인의 비움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가정에서 나를 비운다는 것

그렇다면 이 비움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내 모습을 숨기기가 어렵습니다. 배우자와 자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정에서의 비움은 매우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먼저 나를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내가 맞다”는 생각만 붙들기보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하나씩 꺼내어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용서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내 명예와 성공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에서의 비움입니다. 특히 부부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엡 5:25, 33). 가정에서 내가 먼저 비워야 할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나를 비운다는 것

교회에서도 비움은 매우 실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높아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세워 주었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교회에서 나를 비운다는 것은 직분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직분을 자신을 높이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칭찬받을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 뜻과 다른 의견을 들을 때에도 겸손히 들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내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분이나 경험이나 지식을 가지고 자신을 높이기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일터에서 나를 비운다는 것

일터 역시 그리스도인의 비움이 시험받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승진하고 싶어 합니다.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조금의 편법이나 과장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일터에서도 정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상사가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성실해야 합니다.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경쟁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말하거나 험담하지 않아야 합니다. 회사 물품이나 시간이나 자원을 내 것처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불공정한 상황을 만났을 때에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궁극적인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일터에서의 비움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움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의 비움이 어디를 향하는지 분명해집니다. 비움은 자연스럽게 섬김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비움을 통해 종이 되셨고, 종이 되심으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7~28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비움은 십자가를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세워 주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려는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고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움은 사랑을 가능하게 하고,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날마다 실천하는 ‘비우기’ 세 가지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삶에서 비움을 어떻게 훈련할 수 있을까요? 매일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십시오.

첫째, 오늘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내가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돈일 수도 있습니다.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일 수도 있습니다. 내 뜻과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나 원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인정하고 비우십시오.

둘째,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비움은 생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말할 것인가? 손해를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내 뜻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바로 이런 순간에 자기 부인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내 감정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 말씀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셋째, 비운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비우고 끝내지 마십시오. 비우고 끝내지 마십시오. 비운 자리를 그리스도의 말씀과 마음으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선택하십시오. 이렇게 비움과 채움이 함께 갈 때 우리의 신앙은 단순한 자기수양을 넘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도의 길이 됩니다.

비움은 섬김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단순히 내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비우고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권리를 비우고 섬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자랑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운 자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듯이, 우리도 매일의 삶에서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 그리고 그 비움은 반드시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비운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이 되셨다면, 그분을 따르는 우리 역시 자기를 비워 이웃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